김강용 《무한육면각체 (Infinite Cuboid)》
MARCH 8 - APRIL 27, 2024
장디자인아트는 2024년 첫 전시로 3월 8일부터 4월 27일까지 김강용 작가의 개인전 《무한육면각체(Infinite Cuboid)》를 개최한다. 작가는 전통적 회화 재료를 벗어나 모래를 이용하여 화면에 육면체를 담아내며, 평면성과 일루전이라는 회화의 본질을 50년 이상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에 오롯이 집중하고자 뉴욕행을 감행한 후, 탐구의 결실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최근 15년간의 작품을 망라하여 선보인다.
한국 극사실회화의 대표 작가로 구분되는 김강용은 더 이상 극사실회화 작가가 아니다. 그가 그리는 화면 속 육면체들은 그 시작점이었던 물질세계의 벽돌을 떠나 비물질적 영역에 존재하는 작가의 감각과 사유가 발현된 형상인지 오래이다 . 작가는 1970 년대 후반부터 1980년 중반까지 극사실회화를 추구할 때, 산업화가 한창인 시대에 주변에서 자주 접하던 벽돌을 화면의 반복적 소재로 삼았으며, 극사실적 표현을 위해 벽돌의 현실 재료인 모래를 평면의 재료로 도입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어느 시기 이후 작가는 자신이 타고나고 경험하여 만들어진 감각을 평면 위에 구현하는데 집중하였고, 자신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여 스케치도 없이 화면을 채워 나갔다. <Reality+Image 805-899, 2008>, <Reality+Image 805-900, 2008>은 육면체가 구조적으로 화면을 채우기 시작한 시기의 대표작으로, 2008년 이후 다양하게 변주된 화면 구성과 색의 사용을 통해 그의 육면체 형상은 극사실적 현실 묘사를 벗어나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오가는 화면 속 구성요소가 되었다. <Reality+Image 1908-1682, 2019>에서와 같이 작가는 2010년대 후반부터 여백을 표현하고자 흰 모래를 작품에 도입하였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사물이 그려지지 않은 그저 비어 있는 부분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상상을 이끌어내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흰 모래의 육면체는 이러한 동양회화에서의 여백을 표현하고,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채운다는 작가의 사유를 형상화한 것이다.
1950년 생의 작가는 1978년 극사실회화 단체인 <사실과 현실>이 결성되고 1982년 해체될 때까지 주축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당시 서구의 모더니즘에 대한 한국적 정체성의 발현인 단색화가 한국 미술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민족주의적 관점과 서구에 대한 동경이 반영된 단색화나 정치와 서 구에 대한 반발에 치우친 민중미술에 비하여, 극사실회화는 새로운 형상에 대한 충동에서 시작하여 회화의 존재론적 요소를 탐구하는데 집중하였다. 회화는 본질적으로 평면과 일루전이라는 두 가지의 조건이 따른다. 일루전을 통해 재현을 추구하던 시대를 지나 모더니즘 회화에서는 일루전은 타파해야 할 근대적 소산이었고 따라서 회화 자체가 가진 특징인 평면성을 추구하는 것이 회화의 본질이라 믿었다. 그러나 극사실회화는 사실에의 중립적이고 익명적인 묘사를 통해 수평으로 펼쳐진 공간을 그려내는 근대적 일루전과는 달리 평면 위에 수직으로 서있는 일루전을 그려 내었다. 또한 일점소실의 원근법을 벗어난 다시점의 화면은 모더니즘 추상화와 같이 한 점의 중심이 없는 올오버(all-over) 구도를 이룸으로써 평면성을 드러내며 감상자의 눈이 환영과 평면을 오가게 하였다. 극사실회화는 다양한 담론이 오가는 시기에 근대적 재현을 벗어난 새로운 형상을 통해 일루전과 평면성을 모두 끌어 앉으며, 현대미술에서 구상과 추상의 담론이 교차하는 장을 만들어 내었고, 일루전이란 문제에 집요하게 매달림으로써 일루전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극사실회화로 시작하여 개별화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한 김강용의 핵심 조형 요소는 모래와 그림자이다. 다양한 지역, 색상, 입자의 모래를 준비하고, 이를 반복하여 정면 뿐 아니라 측면에까지 옮겨 바르고, 상감기법을 이용하여 모래의 일부를 파내고 다른 색을 채우는 만들기의 과정이 끝나면, 수많은 모래의 점들 위에 작가의 감각에 의존하여 무수히 많은 선을 쌓아 나가며 그림자의 면을 그린다. 극사실회화의 치밀함은 오롯이 그림자에만 집중되고, 그림자에 의해 다중시점 속 서로 다른 크기의 육면체가 형상화된다. 이러한 모래와 그림자는 감상자로 하여금 눈으로 정면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의 위, 아래, 옆, 정면을 모두 보기위해 감상자가 몸을 움직이며 작품을 감상하게 하고, 감상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각과 경험을 소환하여 그림을 눈으로 만지듯 살펴보게 한다. 환영을 초월한 그림자와 응축된 에너지의 모래는 예술가가 감상자를 자신의 세계로 초 대하고, 상호작용의 장에서 감상자의 다양한 감각과 사유를 소환하며 소통을 만들어낸다.
동시대 회화는 전달과 전유의 시대를 지나 소통과 공유로 그 존재의 의미를 확장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한국의 극사실회화는 관념 미술이 갖는 소통의 부재를 극복하고 평범하고 소외된 일상을 드러내려는 형상의 충동이자,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시대적 담론의 장이였으며, 동시대회화의 존재론적 의미가 확장되는 변곡점이였다. 김강용은 이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가 가진 고유한 감수성과 사유를 독창적으로 표현하고, 감상자의 감각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함으로써 다른 사유를 촉발시키는 장을 만들어 내어, 예술이 가능케하는 무한의 가능성을 형상화하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보는 주체인 내가 김강용이 그려내는 무한육면각체와 조우하여 현실을 벗어나 작가의 감각과 만나는 환상을 체험하며, 회화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길 바란다.
작가소개
김강용(b. 1950)은 전통적 회화 재료를 벗어나 모래를 이용하여 화면에 육면체를 담아내며, 평면성과 일루전이라는 회화의 본질을 50년 이상 탐구해왔다. 작가는 1978년 극사실회화 단체인 <사실과 현실>이 결성되고 1982년 해체될 때까지 주축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산업화가 한창인 시대에 주변에서 자주 접하던 벽돌을 화면의 반복적 소재로 삼았으며, 극사실적 표현을 위해 벽돌의 현실 재료인 모래를 평면의 재료로 도입하였다. 2008년 이후 다양하게 변주된 화면 구성과 색의 사용을 통해 그의 육면체 형상은 극사실적 현실 묘사를 벗어나 화면의 구성 요소이자 작가의 감각과 사유가 발현된 형상으로 나아갔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회화의 평면성과 일루전에 대한 상반된 담론을 끌어 앉으며 구상과 추상이 교차하는 장으로 작품을 승화시키고, 이로써 한국적 극사실회화의 국지성을 넘어 현대미술의 본질 탐구라는 보편성을 획득하였으며, 동시대회화의 존재 의미를 감상자와의 상호 소통으로 확장시켰다.
김강용은 195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한국 동시대 회화 작가이다. 1978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 1981년 동대학 미술대학원 서양화과 석사를 취득했다. 학부 졸업 당시 작가는 <사실과 현실>이라는 극사실회화 경향의 그룹을 결성하며, 이듬해 197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을 한다. 작가의 주요 개인전으로 성곡미술관, 서울(2020), ≪아틀리에 스토리≫ 예술의 전당, 서울(2017), ≪Visual Perception≫ Gallery Peithner-Lichtenfels, 오스트리아(2013), Gallery Michael Schultz, 베이징(2013), ≪Reality + Image≫ Galerie Michael Schultz, 베를린(2012), 중국 미술관, 베이징(2009), 가나아트센터, 서울(2008) 등이 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양평미술관, 박수근미술관, 홍익대 미술관, 서울보건대학교, 대한민국외교통상부 , 인천지방검찰청 , 삼광 컬렉션, 박영사, Frederick R. Weisman Art Foundation, LA 등이 있다.